나 좋아하는 사람 생겼어!
꼭 하려고 해서 오늘 그 말을 꺼낸 건 아니었다. 그냥 오늘은 어쩐지 방지가 내게 너무 잘해줘서. 헤어지고 난 뒤에 안부 메세지 한 번 보내지 않던 그가 내게 잘 들어가라고 문자까지 보내서. 그래서 그랬다.
우리 무휼이가 좋아하는 처자가 생겼어? 그래 그래 어디 사는 어떤 아가씨가 우리 무휼이 맘에 쏙 들었을까?
할머니는 내 말에 반색하며 우리 무휼이 닮은 예쁜 증손주 볼 날이 얼마 안 남았구나 노래를 부르셨다. 그래서 나는 실수했구나 싶었다. 일단 상대는 여자가 아니고. 우리는 아직 결혼까진 생각도 안 했으며. 무엇보다 증손주는... 여기까지 갑자기 밀려온 현실에 난 가벼운 현기증을 앓다가 빠르게 정신을 차렸다. 내게 동생이 많이 있다는 것이 오늘만큼 기뻤던 적은 아마 없을 것이다.
왜 말이 없어? 설마, 짝사랑인건... 아니겠지? 아니지 아니지 그럼 그럼! 우리 무휼이가 짝사랑이라니...
표정이 계속 바뀌는 할머니를 보며, 나는 간신히 상념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아, 아냐 그런 건... 짝사랑 아니야!
난 그리 말하며 내내 손에 쥐고 있던 무를 다시 썰었다.
그렇지? 우리 무휼이처럼 멋있는 애를 누가 가만 냅두겠어. 그렇지! 요즘 뭐냐... 요새 그 썸이라고 하던데. 그런 거냐 무휼아?
그, 그렇지 뭐! 걔느은- 나보다 좀 작고. 그리고 머리가 곱슬이고... 그리고...
나는 그리 말하며 방지의 얼굴을 떠올려봤다. 어쩌다 학점이 안 맞아 듣게 된 교양 수업에서 우연히 만나서, 알고 보니 졸업반인 같은 학과 선배였던, 그렇게 얼굴을 마주한지 이제 겨우 두 달 된, 남자를.
아주 예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