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건데, 그와 함께한 뒤로 한 번도 그런 생각을 가져본 적이 없다. 아니, 감히 할 수 없었다.
그는 내 부모나 다름 없는 존재였고. 내 신이었으며. 내 삶의 전부였으니까.
길지 않은 내 삶 중에서 그와 함께한 시간은 십 년도 채 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 시간은 내 인생의 반 정도는 되는 길이였으며. 그 시간의 처음이나 끝엔 항상 그가 있었다. 아니, 있을 것이라 믿었다. 그리고 그와 함께한 그 시간동안, 그 사실에 한 줌의 의심도 넣지 않았다.
그러나 오늘 처음, 난 꽤 많은 양의 절망을 내 안에 넣지 않으면 안 됐다.
"......"
낡은 식탁을 몇 개 이어 붙인 조잡한 침대에 누워 있는 두령을 보니 속이 찢어질 것 같았다. 그러나 난 울지도 않았고, 슬픈 표정도 애써 숨겼다. 그저 의사가 하는 일을 도우는데 집중했다. 그것이 지금의 내겐 최선인 것 같았고. 무참히 쓰러져 내게 흔한 명령 한 번 하지 않는 두령을 위한 길이라 생각했기에.
그렇다고 슬프지 않았다면, 그건 아니었다. 눈물이 정말로 나지 않았다면 그 또한 아니었다. 그저 내가 가진 슬픔이나 물을 긷는 내내 떨궜던 눈물만큼, 그가 나보다 먼저 떠날 수 있다는 사실을 가슴에 새겨 넣었을 뿐이었다.
그래서 난 죽을 것처럼, 조금 앓았다.
내게 죽음이란 무엇보다 가까운 존재였는데. 그를 만나고 난 뒤부터 아마 그것을 잊었나 보다. 그가 매일 내 앞에 있을 줄 알았나 보다. 매일 이름도 모르고 결국엔 얼굴도 잊어버린 사람들과 내일을 못 볼 것처럼 살았던 마음을, 당신을 만나고 전부 다 잊었는데.
다시 그 마음이 살아나니 이것이 그렇게 슬프고 아픈 일이었나 싶었다. 그래서 아침이 올 때까지 내내 그의 옆에 앉아서 내가 잊고 살았던 과거를 떠올렸다.
"평아, 네가 잘 곳이 없었나 보구나. 어디 가서 눈이라도 붙이지 않고."
"...아닙니다."
"내가 성하면 여길 비켜줄 텐데."
"그런 말씀 마십시오. 전 여기가 편합니다."
"요새 네가 거짓말이 늘었구나. 너만 있는 것 같아 하는 말인데, 나도 지금 여기가 굉장히 불편하다. 근데 네가 어찌 불편하지 않다는 것이냐?"
"저는... 두령님 옆이 편합니다."
내 과거 속을 떠도는 죽은 사람들에 대한 기억은, 깨어난 그가 큰 손을 들어 내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사라져버렸다. 난 남은 앙금을 밀어내며 그가 하는 말에 느리게 답했다.
"그래도 날 위해서 조금 쉬는 게 좋을 것 같다. 너도 알겠지만, 내가 좀 남이 아픈 거 보는 거 싫어하는 사람이지 않느냐. 이제 내게서 가져갈 것이라곤 너 밖에 없는데."
"압니다. 걱정을 끼쳐드렸군요. 두령님이 주무시면 저도 쉬겠습니다."
아마 나는, 당신 대신 죽을 순 없을 것이다. 그것은 내게는 기쁨일지 몰라도 그에게는 아닐 것이다. 나는 그에게 그런 슬픔은 주고 싶지 않다. 그러니 나는 살아서, 당신이 남긴 것을 지켜낼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아직은, 당신을 떠나 보낼 준비가 되지 않았다.
그러니까, 두령님.
아프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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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로세움 컷 확인하면서 끄적... 너무 늦어서 마지막 급전개... 급전개는 제 아이덴티티니까욘... (..)
단동 식구들 이야기 좀 나왔으면 좋겠는데 이제 겨우 2화 남겨둔 시점에선 무리... -_ㅠ 충분히 풀어낼 수 있었을 텐데 쓸모없는 곁가지에 충실했던 작가가 밉다... 평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지 도통 모르겠다... 깊어만 가는 내 날조 설정 ㅠㅠ 평이가 정태랑 나이가 같다고 보면 역시 굉장히 어린 축에 속하는지라... 두령님도 아들?은 좀 무리고 조카? 정도 키우는 맛이 들지 않을까 싶은데...
올해는 꼭 재록본 작업을 끝내고 싶어서 두령님 가지고 긴 이야기는 못 쓰겠는데... 여유가 생기면 꼭 과거 덧붙여서 쓰고 싶긴 하다 ㅠㅠ 하루가 48시간이면 좋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