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청운 사랑해2017. 7. 15. 21:29

청운은 눈꺼풀 위를 덮는 햇빛에 놀라 잠에서 깼다.

제정신이냐, 이청운! 이렇게 퍼져 잠이나 자다니 대체 어쩔 셈이야? 안 그래도 전력에 도움은커녕 짐만 되게 생겼는데!
풀어둔 안대를 더듬어 찾아 익숙하지 않은 손짓으로 묶던 청운은, 문득 이상한 기분에 손바닥을 바라보았다. 손바닥 마디 사이로 하얀 부스러기 같은 게 떨어졌다. 주먹을 몇 번 쥐어보니 평소보다 아픔이 덜한 듯했다. 손바닥을 매만지니 뭔가가 묻어 나왔다.
누가 약을 발라주고 갔나.
청운은 떠오르는 사람을 몇 짚어봤다. 무하, 우보, 저하...
그날 일이 떠올라 침울해진 청운은 한동안 손바닥 위만 긁었다. 내내 그러다가 햇빛이 한 걸음 더 다가오자 놀란 듯 자리에서 일어나 검을 들고 밖으로 나갔다. 이렇게 넋 놓고 있어선 안 된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헌데, 막상 나가보니 밖에선 곤이 한창 칼을 휘두르던 중이었다.
전부터 자신이 곤에겐 상대가 되지 않는다 생각은 했었다. 애써 무시하려고 했던 사실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눈앞에서 그가 추는 검무를 보고 있자니 가슴 한켠이 쓰렸다.
이제 난 떨어지는 것 말곤 할 게 없다. 그래도 과거엔 저 자와 몇 합이라도 칼을 섞을 수 있었는데. 지금은 한 합도 섞지 못하고 나가 떨어질 게 분명했다.

그런 생각이 청운을 비참하게 만들었다.

청운은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다른 손에 쥔 검을 뽑아 들었다. 매일 예리하게 갈아놓던 칼이 오늘은 유독 빛이 바래 있었다. 그럴 만도 했다. 이선을 비롯해 다른 사람들 앞에선 혹여 자신이 평소와 다르단 걸 알아채기라도 할까 내내 긴장 상태였으니까. 그랬기에 혼자 있는 시간이 되면 긴장이 풀어져서 기절하기 일쑤였다. 그렇게 버려둔 칼날이 멀쩡할 리 없었다.

그래서 청운은 다시 안으로 들어갔다. 만신창이가 된 몸. 그런 주인 곁에서 녹이 스는 칼. 그런 것들이 자신을 짓눌러 청운은 칼을 다시 칼집에 넣어 버렸다.

이러면 안 된다는 생각과 이래도 상관없다는 생각이 섞여서 머릿속이 엉망이었다. 자신이 이렇게 약한 사람이었단 자괴감이 몰려왔다. 빨리 쓸모 없어지는 것과 늦게 쓸모 없어지는 것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을까. 오늘 체념하는 것과 후일에 체념하는 것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을까. 되뇌이고 되뇌여 봐도 자신이 겪는 고통의 무게만 무거워질 뿐이었다.

그래서 청운은 칼집을 부여잡고 눈물을 떨구고 말았다. 이러고 싶진 않았는데, 떨어지는 눈물을 막을 여유도 없이 눈물이 쏟아졌다. 고개를 떨구니 눈물이 방울방울 떨어지는데, 한 쪽에서만 뚝뚝 흘러서 청운은 서러움에 목이 멨다.

그래서 청운은 곤이 자신의 뒤에 있단 사실을 한참이 지나서야 알았다.

 

"이런 고약한 취미가 있는 줄 몰랐습니다."

 

청운은 바위처럼 서서 자신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곤을 보지 않은 채 볼멘소리를 내뱉었다.

 

"쉬는 게 좋을 것 같은데."

 

뜬금없는 곤의 말에 청운은 울고 있단 사실도 망각한 채 고개를 돌려 그를 보며 소리쳤다.

 

"당신이 상관할 바 아닙니다!"

 

그 말에 곤의 표정이 일순 흐려졌다. 갑작스레 공격적인 살기를 내뿜는 곤을 보며 청운은 순간적으로 칼을 뽑아 그를 향해 내밀었다.

 

"너는."

 

곤은 거기까지 말했다가 입을 닫았다. 다음 말을 이어도 될지 가늠을 해본 것이다. 청운이 자신을 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자, 곤은 다시 입을 열었다.

 

"아직 죽으면 안 될 텐데."

 

그가 내비치는 살기에 짓눌린 청운이 입술을 깨물며 손에 쥔 칼을 그러쥐었다. 채 낫지 않은 팔이 떨렸다. 짧은 시간 동안 청운은 별 생각을 다 했다. 역시 이 자는 믿을 자가 못 된다고 하지 않았어! 나를 죽이고 저하한테 가면 어쩌지? 내가 여기서 최대한 막아야 해. 젠장, 칼 하나도 제대로 못 쥐는 몸뚱이라니! 이대로 찌르고 나가면? 아직 달릴 수는 있어, 이청운. 포기하지 마...

 

"역시 아직 죽을 생각은 없나 보군."

 

곤은 들고 있던 칼집으로 청운의 칼을 쳐냈다. 쉽게도 손에서 빠진 청운의 칼이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바닥에 떨어졌다. 청운은 분한 표정을 드러내며 곤에게 달려들었다. 그러나 곤은 간단하게 그를 제압해 바닥에 찍어 눌렀다.

 

"이... 배신자...!"

"딱히 누굴 배신한 적은 없는데."

"웃기지 마! 내가 죽는 한이 있어도, 네가 저하께 갈 일은, 없을 것이다!"

 

평소였다면 이렇게 무력하게 당하고 있진 않았을 텐데! 청운은 이를 물며 곤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을 쳤다. 그러나 약해진 몸으론 곤의 악력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악에 받쳐 악을 쓰던 청운은, 몸에서 힘이 빠질 때쯤에야 뭔가 이상하다는 걸 느꼈다.

 

"...느리군."

 

그제야 곤이 한숨쉬듯 입을 열며 청운을 가둔 손을 풀어냈다. 재빨리 곤을 밀어내고 뒤로 물러난 청운은 숨을 몰아쉬며 곤을 노려봤다. 뭐지? 저하를 죽일 생각이라면 날 죽이고 가야 하는 건데. 근데 어째서.

 

"무슨 생각인 거냐!"

"세자를 배신할 생각은 없다."

"뭐?"

"나는 세자 편이 아니니까, 세자를 배신할 일은 없다는 말을 하려는 거다."

"...뭐?"

 

거기까지 생각한 청운은 그가 자신들에게 정보를 넘기려던 순간을 떠올렸다. 청운이 갑작스레 쏟아진 정보에 말을 잃은 사이, 곤이 입을 열었다.

 

"하지만 너는 있잖아."

 

그 말에 청운은 눈을 크게 뜨지 않을 수 없었다. 그가 한 말에 머릿속을 휘감던 막막함이 거치고, 내내 흐르던 눈물마저 멈췄다. 청운은 뜨거운 숨을 토해냈다.

 

"나는..."

"그러니까 쉴 수 있을 때 쉬도록 해. 때가 되었을 때 쓰려면."

 

그리 말한 곤은 몸을 일으켰다. 그러자 청운이 외치듯 말했다.

 

"나는!"

 

그 말에 곤이 멈춰섰다.

 

"아직 당신을 인정한 거 아닙니다!"

 

청운의 말을 다 듣지 않고 나가버린 곤의 잔영을 살피며, 청운은 긴장했던 몸을 풀며 한숨을 내뱉었다. 그리곤 멀찍이에 떨어진 자신의 칼을 주워들었다.

아직 자신에겐 해야 할 일이 있었다. 부서졌지만 일어서지 못할 몸도 아니었다. 이대로 무력해질 수는 없었다.

아직 지켜야 할 사람이 있다. 가만히 있다 후회만 하는 삶을 살고 싶진 않았다. 누구라도 언젠간 죽는다. 무엇보다 당신마저 없는 세상엔 살고 싶지 않다.

청운은 그리 생각하며 몸을 일으켰다.

 

 

 

 


=====

 

 

드라마에 대한 욕은 이제 더 하고 싶지 않네요. 해봤자 이제 의미도 없음. 언제 명드를 팔 수 있을까 고민하는 삶... 여기에 적힌 글들 왜 다 망드에 고통 받는 글만 잔뜩인지 알 수 없는 쓰라마덕의 삶...

 

곤이랑 청운이 어떻게 한 마디도 안 할 수가 있어...

너무해...

메이킹 그런 것도 솔직히 서브 캐릭터들 너무 너무 너무 너무 적어 ㅜ0ㅜ 이렇게 천대하기 있기 없기? 아 육룡이 파다가 이런 거 파려고 하니까 정보 너무 없어서 죽는다... 육룡이는 우주에서 최고로 친절한 무사 드라마... 인정 합니다...

 

그건 그렇고

연재처(?)를 옮길 생각입니다... 귀찮아서 안 옮길 수도 있지만... 일단 뭐 글을 쓸 생각이 계속 들어야 옮기겠지만...

본래 검색에 걸릴 용도(마이너일 경우 동지가 있단 것만으로도 힘이 되니까)로 여길 이용했는데, 자주 포스팅을 삭제해서 그런지 어떤 이유에선지는... 알 것 같긴 하지만, 타 사이트에선 검색되지 않아서. 뭐 굳이 검색 걸리게 해주세요 ㅎㅎ 할 필요까진 없을 듯해서. 그런 점에 있어선 초연해지기로 했네요. 이제와 다른데 만드는 것도 너무 귀찮은 듯. 오래 썼는데, 아쉽기도 하고. 옮길 경우 공지하겠습니다.

Posted by 진금
이청운 사랑해2017. 7. 9. 22:56
살수로 산다는 것은 무기가 된다는 것이다.
무기란 것은 망가지거나 부서지면 대체로 버린다. 망가지거나 부서졌다는 건 명을 다했단 것이고, 명장이 공들여 만든 무기가 아닌 이상 고쳐 쓰는 건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또한 명장의 무기란 쉽게 부서지거나 망가지지도 않는다.
그러니까 우리, 그 속의 나는 그런 존재다. 기억이라는 것이 존재했을 때부터 그런 존재임을 인지하며 살았다.
망가지면 죽는다. 이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운명과도 같다.
망가진다는 것은 무엇일까. 어린 내게 어르신은 그런 말을 했다. 무기가 망가진다는 것은 쓸모가 없어지는 것이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쓸모가 없어지는 것이 망가진다는 것이지.
우리는 임무에 실패하면 대부분 죽는다. 죽지 않고 살아 도망쳐도 증거를 남길 경우 역시 죽는다. 만에 하나 증거는 남기지 않고 도망쳤다 해도 몸이 성한 자는 거의 없다. 몸이 성하지 않는다면 살수로선 쓸모가 없어진다.
그래도 내가 속한 편수회는 쓸모가 없어져 죽는 경우는 아주 적은 편이다. 어디나 허드렛 일을 할 사람은 필요하니까.

"흐으윽..."

나는 신음하며 흐느끼는 자를 바라본다.
벽에 몸을 붙이고서 괴로움에 바닥을 긁는 손을 바라본다.
너를 동료로 인정한 것은 아니라는 말을 던지고 돌아서서는, 해가 지면 악몽에 시달리고 해가 뜨면 피폐해진 낯으로 꺼진 눈을 감싸는, 망가진 무기가 된 사람을 바라본다.
나는 눈을 잃은 자를 많이 보았다. 다리를 잃은 자도, 팔을 잃은 자도 보았다.
대부분 버려졌으며 이후의 삶은 알지 못한다. 아마도 죽었을 것이다.
왜냐면 쓸모 없어졌으니까.

"괜찮아? 더 쉬지 그래."
"괜찮습니다."
"네 고집을 어떻게 꺾겠냐. 무리는 하지 마라. 응? 어이 거기, 우리 청운이 좀 잘 살펴주시고? 우리 청운이 또 다치면 내가 댁 가만 안 둬!"

이 자는, 운이 좋은 편이다. 눈도 하나는 있고 주변에 그를 버리지 않을 선한 사람들이 많으니까.
하지만 그의 주변엔 무인이 없다. 살수로 살아온 나조차 아는 걸 모르는 사람들 천지다. 아무렇지도 않게 내게 그의 안위를 책임지라 말하는, 너무도 선하여 목숨만 부지하면 된다는, 평범하고 소소하고 천천히 흐르는 삶을 그리워 하는, 무르고 무딘 사람들 뿐이다.
그래서 이 자는 그들 앞에서 무너지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괜찮냐고 묻는 사람들에게 괜찮다고 한다. 이 자도 선한 사람이기에 괜한 걱정 끼치고 싶지 않기에 하는 행동이다.
하지만 그는 눈 하나를 잃고 장시간의 고문에 노출되어 내력또한 많이 잃었다. 그건 그가 다시는 전성기의 힘을 찾을 수 없고 더는 무기로써 살 수 없단 걸 뜻한다.
그의 선한 지인들은 그런 그도 괜찮다고 할 것이다. 그가 따르는 세자는 그를 버리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도 이 자가 가진 절망감의 깊이를 가늠할 순 없을 것이다.
더는 무기로 살 수 없는 삶. 그런데도 너무 길게 남아버린 삶을 이해할 사람은 같은 무인이 아니고선 모르는 것이다.
나는 아가씨가 없어도 아직 무기로써 살 수 있다. 그래서 더는 무기로 살 수 없는 그를 보는 게 안쓰럽다. 내가 그를 안쓰럽게 여겨도 되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누구도 아닌 적이었던 나만이 그의 괴로움을 알고 그의 아픔을 지켜봐야 한다는 건, 아마도 슬픈 일일 것이다.
나는 몸부림치다 결국 기절한 듯, 느리게 벽에서 떨어진 그의 손바닥을 바라본다.
평범하고 소소하고 천천히 흐르는 삶을 느끼기엔 우린 너무 멀리 왔다.
채 낫지 않는 그의 갈라진 손바닥이 그리 말하고 있었다.
나는 품에서 약을 꺼냈다. 그가 깨지 않게 조심하며 그의 손바닥에 약을 발라주었다.
천천히.
천천히.
.
.
.


으아아 모바일로 쓰려니까 너무너무 힘드네욤... 근데 너무 더워서 머리도 잘 안 돌아가고... 여기까지가 나의 한계... 살아라 곤...
Posted by 진금
이청운 사랑해2017. 7. 2. 15:23
내 청운 집도 절도 없이 떠도는 삶 눈도 없는데 이제 어떡하냐 이선이 책임지는 수밖에 없다
Posted by 진금
이청운 사랑해2017. 6. 16. 16:43

PO스타입에 올렸던 글인데 여기에도 올림.

 


많은 일이 순식간에 일어났다, 끝났다.
청운은 오늘도 새벽바람에 잠에서 깼다. 이선이 보부상을 따라다니기 시작한 뒤로 간혹 비어있는 옆 자리였건만,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는 것처럼 빈 자리가 쉽게 익숙해지지 않았다.
아마 평생 익숙해지지 않겠지.
그리 생각하며 푸른 빛이 깔린 마당에 서서 검집을 풀어냈다. 해가 아직 떠오르지 않아 주위는 어슴푸레한 빛이 깔려 있었다. 그래서인지 검신을 따라 흐르는 빛도 탁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항상 최악을 가정해야 한다."

 

아버지가 자신을 가르치며 항상 입에 담던 말을, 그때는 설마 하며 넘기곤 했다. 청운은 손잡이에 땀이 차는 걸 느끼며 호흡을 가다듬었다.아버지는 왕의 곁에서 왕의 편에 서서 항상 왕의 그림자로 살아왔다. 그래서 아버지는 항상 모든 걸 말해주지 않았다. 강해지라고 했고, 나약한 모습을 보이면 가차없었으며 그 모든 일의 이면엔 왕이 있었다. 그 점이 항상 미웠고, 그래서 절대 왕실을 위해 일하지 않겠노라 다짐했다.

 

"어떤 일은 거스를 수가 없다."

 

이제 더는 네게 가르칠 것이 없다며 하직시켰을 때, 아버지가 한 말을 청운은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다. 그 뒤로 자신은 친구나 다름없었던 세자의 스승이 되었다. 항상 어디 도망가기 일쑤고, 사라져서 자신을 골탕이나 먹이던 세자때문에, 청운은 이게 아버지가 말한 거스를 수 없는 일이구나 싶었다. 그래서 이선이, 사우는 나중에 내 호위무사가 될 겁니까? 라는 질문에 하지 않는다 했던 것이었다. 그 말에 상처받았단 표정을-보이진 않았지만- 내비친 이선을 보며 바로 후회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기에 굳이 정정하진 않았다.
청운은 쥐고 있던 검을 휘두르며 입술을 꾹 물었다.
이제 자신은 이선의 호위무사였다. 물이 아래로 흐르는 것처럼. 비가 바닥으로 떨어지는 것처럼. 마치 자신의 삶은 이미 다 정해져 벗어날 수 없다는 것처럼.
차마 삼키지 못한 눈물이 쏟아져서 앞이 잘 보이지 않았지만, 청운은 휘두르는 검의 속도를 늦추지 않았다.

아버지의 시신은 찾지 못했다.

이선이 정신을 잃은 사이 국장이 진행되었다. 비명횡사한 왕을 추모할 여유도 없었다. 세자의 친모인 영빈마저 독으로 죽었단 말을 들은 뒤엔 차마 아버지가 살아 있을거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어딘가에 버려져 있을지도 모를 아버지의 시신이라도 찾고 싶었다. 하지만 금군의 대부분이 이미 축출된 뒤였기에 자세한 정보는 찾을 수 없었다.
이럴 줄 알았다면 처음부터 세자의 호위무사를 자청하며 아는 사람이라도 많이 만들어 둘 걸. 늦은 후회를 삼키며, 보부상이 돼 떠도는 이선의 안위조차 애써 무시하며, 시신이 떼로 묻힌 곳을 찾아다녔다.
하지만 시신들은 자신의 생각보다 더 빠르게 부패했으며, 썩어가는 시체들 틈에서 아버지를 찾아내는 건 불가능했다.

 

"말하신 최악이라는 것이 이런 것이었습니까!"

 

모시던 왕이 죽고 당신마저 죽는 것이, 당신이 말한 최악은 아니었을 텐데.
적어도 제가 생각하던 최악은 아니었습니다. 어떻게 살면서 이런 최악을 가정하며 산단 말입니까.
힘이 빠진 손에서 검이 빠졌다. 청운은 그대로 자리에 주저 앉았다. 아버지가 스쳐가며 했던 말들이 뒤섞여서 머릿속이 엉망이었다. 차라리 죽었다면, 아버지의 등을 지고 서 적들의 가슴을 몇 번이고 베다, 죽었다면.
청운은 멀리서 천천히 떠오르기 시작하는 해의 온기를 느끼며 뺨에 닿은 눈물을 닦아냈다. 주위를 둘러싼 차갑고 습한 공기는 간데 없고, 그림자 하나 제대로 드리워지지 않았던 푸른 세상은 사라져 있었다. 멀리에 자신의 손에서 빠져버린 검이 보였다. 비스듬히 땅에 박혀 있는 검의 날은, 이제 막 떠오르기 시작하는 빛을 놓치지 않고 있었다. 그 주위가 너무도 밝아 청운은 눈을 몇 번이나 부볐다.

 

"그리 채근하지 않으셔도, 저도 압니다."

 

깊게 박혀 있는 검을 뽑아 검신을 따라 흐르는 빛을 보며 청운이 입을 열었다.

 

"최악은 아니지요."

 

아직 저하가 살아 계시니까요.


 

 

 

 

=====

 

청운이도 테마곡 넣어 주세요... (어림도 없음 ㅠㅠ

 

Posted by 진금
이청운 사랑해2017. 6. 15. 00:59
오늘자 궁듀 보며 노잼 대잔치 억지 로맨스에 피를 토했으나 후반부 정치씬은 또 그럭저럭 재밌어서 내일 기다리는 나는 어디에 있는가... 와중에 무하청운 생각나는 게 있어 여기에 적는다... 완전 생각의 흐름...

둘이 누워 있는데 무하가 갑자기 나는 저하가 가끔 밉다 이러는 것임 ㅜㅜ 그럼 청운이 띠용 이러겠지만 내키지 않아서 물어보진 않는데 그러든 말든 무하는 자기 말 다 해버림 ㅋㅋ
나는 가끔 잠이 안 온다. 규호 나리 죽어가던 모습이 눈에 선해서... 처음부터 저하에게 편수회를 조사하자고 한 것도 나였고 규호 나리를 설득한 것도 나였고 어쩌면 원흉은 나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데 자신은 살아있고 규호는 죽었으니까. 근데 처음부터 저하만 없었다면 이런 사달이 나지도 않았을거란 생각이 들고 또 규호 나리를 죽인 사람은 저하니까 그게 또 자꾸 생각나서
저하께선 잘못이 없으십니다...
알아.
저하께선...
네가 그렇게 네 소중한 세자 저하 감싸지 않아도 알아. 그냥 그렇다는 거야. 내가 또 이런 말을 누구한테 하겠어? 청운이 너말곤 없는데. 좀 들어주면 안 되냐...
근데 사실 규호 죽인 건 청운인데 자신이 세자 가면 쓰고 규호 어르신 죽인 거라도 말 못하겠는 청운이 ㅜㅜ 운다 ㅜㅜ 내가 한 건데 ㅜㅜ 제가 한 겁니다! 제가! 저하는 잘못 없는데... 엉엉...
무하청운 뽀레버 ㅜㅜ (제정신이 아닙니다
Posted by 진금